성립 다음해인 1949년 7월 대만성통지관은 臺灣省文獻委員會로 개조되었으며 이 기구는 문헌연구 외에도 編纂組, 採集組 및 整理組를 두고 대만관련 문헌사료의 채집, 정리, 수장, 문헌서간의 출판 및 史志의 纂修 등 업무를 담당하였다. 중화민국시기의 외교부당안(1930년 이후) 중 기밀이 해제되었거나 보존기한이 지난 자료들은 臺北와 인접한 新店市에 위치한 國史館으로 이전. 최초로 한국에 도착한 장로교 선교사는 알렌으로, 그는 애초 중국에 파송되었지만 1884년 9월 20일 미국공사관 담당 의사 자격으로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여 가족과 함께 정착하였고 이후 1887년 광화문사거리 인근에 장로교의 첫 교회인 새문안교회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鄭道傳 일파로 활동하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피살되고 말았다. 특히 이종률은 자신이 참여했거나,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빠져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소상하게 관련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이후 15년 동안 이종률은 자택을 가르침의 현장으로 지역 내 청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지속하는 한편, 한국 근현대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나마 윤광섬의 아들 尹宗圭(初名:尹宗基, 1758∼1822)가 1790년(33세) 증광 진사시에 합격해 55세에 북부도사로 관로를 시작해 현감까지 지냈으나, 윤종규 이후 자손들의 관직 진출은 더 저조하여 과거급제자나 관직 진출자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1395, 초명 玉鸞)은 1346년(충목왕 2)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李成桂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후인 공양왕 2년(1390) 戶曹判書에 오르고 이어 兵曹判書ㆍ吏曹判書에 오르며 크게 현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초간본이 거의 유실되자 19세기 초 그를 제향한 居昌 屛巖書院에서 중간을 도모하게 되었다. 뒤에 첨부된 절목은 임자년( 대전오피 ) 절목과 내용이 대체적으로 같으나 상태가 좋지 않고 끝부분이 마모되어 전체의 내용을 살피기는 힘들다. 의 개인 문서군에서 나온 문서로, 이인섭이 한인들의 빨치산 투쟁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여 체르느이쉐프 앞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1930년대 문서들은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이전까지 한인들의 토지이용문제, 한인 노동력 문제, 한인사회주의자들간의 파벌투쟁문제, 강제이주를 전후로 한인들에 대한 부동산 배상과 인력배치문제, 한인이주와 관련한 당국의 전문과 조치, 이주열차, 고려사범대학과 고려극장, 한글신문 ‘선봉’ 기사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Fond 304에 포함된 두 문서는 1929-1933년에 걸쳐 소련당국이 계획했던 한인들의 하바로브스크지방으로의 이주 5개년계획에 관한 것으로 강제이주전에 극동지방 행정당국이 한인들의 자발적인 이주를 시도한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문건이다.願納錢 관련 문서는 景福宮 중건 당시 願納錢과 鍮鐵 수납에 관련된 것이다. 이들 문서는 출발시점, 출발지점, 인원수 등 구체적인 이주방법과 상실한 재산에 대한 보상방법 등이 명시하고 있다.
자료 유형은 공식서한, 보고서, 회의 요약본, 비망록, 분석 차트, 통계 자료, 기술분석 자료 등 다양하다. RG 306 자료 속에는 미공보원이 주도했던 각종 여론조사 자료, 미국의 소리(VOA) 관련 자료, 『논단』· RG 306 미국 공보원 기록물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일환으로 펼쳐지던 미국의 선전정책과 심리전에 관한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1945년 일제패망 이후 중국대륙이 국공내전의 전화에 휩싸이게 되어 이곳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의 상당수가 소실되는 불행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본 조사에서는 충북지역에서도 도시화 및 지역개발붐이 덜했던 그래서 이농이 적었고 따라서 제대로 된 영농후계자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청원군을 1차적으로 수집대상으로 하였다. 동학 이후 분파된 근대 종교사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자료이며 한국 종교에 있어 근대 종교의 탄생과 분파과정에 대한 좋은 사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이 집안 인물이 주고받은 간찰에는 고종대 이후 영남만인소의 소수로 활동했던 김석규, 권연하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많다. 이 회의록은 종래 연구자들이 활용해온 일본어 번역본에 비하여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고, 여러 중요한 쟁점들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자료들은 대부분 한국전쟁에 관한 모든 부분을 언급하고 있으며, 매우 중요한 자료들로 취급되어야 할 것들이다.
1) 중앙문서철 미 국무부 기록 중 가장 방대하고 가장 중요한 범주가 바로 중앙문서철(Central File)이다. RG 59의 문서들은 두 개의 주요 그룹, 즉 중앙문서철 기록물(Central File Records)과 비중앙문서철(혹은 특수문서철) 기록물(Records filed outside the Central File or Special Files)로 나뉜다. 십진분류체제는 기본적으로 100단위로 표시되는데 백단위는 9개의 주요 주제등급을, 십단위와 일단위를 합친 두 자리 숫자는 각 나라와 지역을 표시함.(예: 한국 95, 중국 93, 일본 94, 프랑스 51, 독일 41) 또한 소수점 아래로는 특정한 주제등급에 따라 특정한 숫자가 배열됨. 다음으로는 칠곡군에는 유력가문이라 할 수 있는 집안이 인동 장씨와 광주 이씨 두 집안이 대표적이다. ‘曉現彗星夕現于西’, ‘暑針九十八度’ 등 천문 기상이변과 같은 기록도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것 같다.癸卯秋公議追節目ㆍ乙巳十月契案改修正時追節目ㆍ追節目ㆍ庚戌追節目이 더 추가되어 수록되어 있다. 국사관대만문헌관 소장 중요 자료는 臺灣總督府檔案, 臺灣總督府專賣局檔案, 臺灣拓殖株式會社檔案, 臺灣省行政長官公署檔案, 臺灣省級機關檔案, 臺灣鹽業檔案 등으로 일제시기 대만의 사회·